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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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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반] 음수의 역사
이름
심아영
작성일
2015-05-09

  처음으로 수가 등장한 것은 물건, 이를테면 원시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기르는 사냥감이나  사축들의 수를 셈하기 위해서였다. 수에는 어떤 물건의 모임이 대응한다. 그러나 음수에 해당하는 물건은 없다. 가령 -3마리의 양떼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1, 2, 3과 같은 자연수는 금방 그 수에 해당하는 눈에 보이는 물건의 집합이 있다. -1, -2, -3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 점에 있다.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취급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상상력을 가졌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도 머리 속에서 그려 낼 수 있다. (-3마리의 양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 반 물질로 된 양이거나 빚을 진 3마리의 양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1, 2, 3 …과 같은 자연수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자연스럽게 발견되었다. 그러나 음수를 발견하는 데는 그 후로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야 하였다. 학생들이 음수를 어렵게 느끼는 데에는 나름의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수라고 하면 모두가 자연수뿐이었으므로, 따로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음수라는 것이 등장하면서 그와 대조적인 수(자연수)를 새삼 새로운 이름을 붙일 필요가 생겼다. 자연수를 음수의 반대 개념인 '양수'로 부르게 된 것은 그래서였다. 그러다 보니, 양수․음수에 0을 덧붙인 전체를 부르는 이름도 필요하다. 정수가 그것이다. 고대에 음수를 이해하고 있었던 곳은 중국뿐인 것 같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2~3년경의 진․한(秦漢)시대에 [구장산술]이라는 책이 쓰여졌으며, 신라의 수학교과서로 쓰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도 양수, 음수를 사용하고 있으며 양수를 나타내는 수막대는 빨간색, 음수는 검정색으로 표시했다. 요즘도 손해를 봤을 때 '적자(赤字)'라고 하는데, 이것은 빨강과 검정의 뜻이 엇바뀌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음수․양수를 이용하여 연립 일차방정식의 해법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7세기경에 인도의 브라마굽타가 0 및 음수의 개념을 도입했다. 그것이 8세기경에 아라비아로 건너가고 12세기경에 유럽에 전해진다. '플러스', '마이너스'는 피보나치(1180?-1250?)가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는 라틴어의 et(영어의 and)를 갈겨쓴 것에서, -는 minus의 m을 갈겨 쓴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수 방정식의 해로서의 음수를 인정하게 된 것은 16세기경이다. 중국에서 일찍? ?음수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동양사상의 기본인 음양론 덕분이다. 우리 태극기는 음과 양이 조화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동양인은 음수를 생각해낸 것이다. 이런 옛적의 사상(음양론)을 모르는 독자 여러분이 음수를 이해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데카르트 이전의 서양의 수학 대가들에게 이미 음수가 알려져 있었지만 그들은 음수를 가공의 수, 불합리한 수, 가짜의 수로 여기고 있었다. 서양인에게의 음양의 사상이 없었기 때문에 수로서 실감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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